양자컴 창업 부트캠프 가보니 대학생·교수·컨설턴트 등 전국 20~60대 '덕후들' 모여 아이디어 공유하고 발전시켜 한국 양자컴 경쟁력 키우려면 혁신 스타트업 많이 나와야
"10년 안에 한국에서 양자컴퓨터를 만들고 기존 컴퓨터가 못 푸는 문제를 푸는 게 목표입니다."
"양자컴퓨터를 만들려고 다니던 회사도 박차고 나왔습니다. 저는 꼭 성공할 겁니다."
양자컴퓨터를 향한 진심 어린 고백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한 명씩 일어나 양자컴퓨터를 좋아하는 이유와 꿈을 밝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기도 하고, 동지를 찾은 마음에 기뻐하기도 했다. 때로 경쟁자를 찾은 듯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양자컴퓨터에도 기술이 완성되고 대중화되는 '챗GPT 모먼트'가 올 것이다. 지금은 먼 미래처럼 보이지만 부지불식간에 어느 날 양자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공상 같은 10년 후 원대한 비전을 말하는 자리였지만, 누구도 비웃는 사람은 없었다.양자컴퓨터 창업을 꿈꾸는 예비창업자들이 모였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지난달 29~30일 개최한 양자컴퓨터 창업 교육 프로그램 'Quantum NEST'를 찾았다. 20대부터 60대까지 전국에서 모인 예비창업자 30명과 정보를 교환하고 양자컴퓨터 시장 동향을 파악했다. 최수임 블루포인트파트너스 PM은 "양자컴퓨터 분야가 파편화돼 있어 서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창업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면 좋을 것 같아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터는 신중론도 많은 분야다. 양자컴퓨터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양자컴퓨터가 실현되려면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가 두 달 만에 "내가 틀렸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여전히 양자컴퓨터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날 참석자들 이야기는 달랐다. 이들은 "양자컴퓨터는 분명히 머지않아 상용화될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평생 교수로 산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대 젊은 나이에 창업에 뛰어든 사람도 있었다. 이동한 브라이트퀀텀 대표는 충남대 물리학과 교수를 지내다 지난해 은퇴하고 회사를 세웠다. 이 대표는 "양자 분야는 아이디어만으로 창업하기가 어렵다. 평생 연구하며 쌓은 기술을 바탕으로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고려대 물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장준녕 씨는 "양자컴퓨터를 연구하다 보니 창업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우주에서 작동하는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것이다. 아직 아무도 이루지 못한 기술이다. 그는 "양자컴퓨터에 필요한 극저온과 진공을 조성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며 "우주에서 양자컴퓨터를 만들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양자컴퓨터 시대를 준비하려면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지난달 창업한 김준성 큐블랙에이아이 대표는 양자컴퓨터에서 사업의 미래를 찾고 있다. 김 대표는 컴퓨터 비전 분야를 연구하는데, 현 기술로 데이터를 처리하면 개당 30분이 넘게 걸린다. 김 대표는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수만 건이 넘기 때문에 양자컴퓨터를 빨리 도입하는 게 곧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완전히 새로운 기회를 보는 이들도 있었다. 경영컨설팅 업체 밸류마크의 김태훈 PM은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자영업자들이 참여할 시장이 있을지 보러왔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프로그래머가 일자리를 잃고 있는데, 앞으로는 양자컴퓨터 교육 쪽으로 전향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양자컴퓨터가 새로운 시장을 열 것"이라고 했다.
국내 양자컴퓨터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들의 성공이 중요하다. 한국연구재단 양자기술단장을 맡은 이순칠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는 "기술이 발전하려면 기업이 들어와야 하는데 아직 국내 대기업은 들어올 것 같지 않다"며 "스타트업이 많이 생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은 아직 양자컴퓨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이 양자컴퓨터에 전폭적으로 투자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에 대해 정일룡 국가양자정책센터장은 "국내 대기업들은 아직 돈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일러도 5년 내에 상용화될 기술에 투자하는 건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다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정 센터장은 "양자컴퓨터는 상용화되는 순간 전략자산이 된다. 서둘러 국내 독자 역량을 확보하고 핵심 공급망을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한국은 해외 주요국에 비해 양자컴퓨터 기술과 투자가 크게 뒤처진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23년 이전까지 양자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만 153억달러(약 21조원)다. 반면 한국 정부가 같은 기간 양자 분야에 투자한 건 1억달러(약 1400억원) 미만이다.
글로벌 시장으로 봐도 아직 양자컴퓨터의 승자라고 할 만한 기업은 없다. 구글, IBM 등이 앞서고 있지만 결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는 "그렇기에 아직 한국도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비창업자들에게 "창업자 생각의 크기가 사업의 크기"라며 "서로 도우면서 도전적인 꿈을 가져 달라"고 했다.
양자컴퓨터
양자역학을 활용해 연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신개념 컴퓨터. 슈퍼컴퓨터를 넘어서는 초고속 연산 작업이 가능해 '꿈의 컴퓨터'로도 불린다. 길을 하나씩 찾아가야 하는 일반 컴퓨터와 달리 양자컴퓨터는 동시에 수많은 길을 탐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존에 0과 1만으로 풀 수 없었던 인류의 다양한 난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로 여겨지고 있다.[대전 최원석 기자]